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태종 무열왕 (문단 편집) == [[묘호]]와 [[시호]] == * 묘호: 태종(太宗) * 시호: 무열대왕(武烈大王)[* 무열왕릉비. 정확하게는 태종 무열대왕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태종대왕(太宗大王)[* 2022년 경주에서 발견된 공순아찬신도지비에서는 '태종대왕'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 내용은 "[[아찬]] 김공순(金恭順)은 [[태종 무열왕|태종대왕]]의 손자이다(太宗大王之孫者也). 우리 김씨의 근원은 [[소호(중국 신화)|소호]]다.(我金氏淵少昊)."] 문헌기록에 남아있는 [[삼국시대]] 묘호 중에서 주인이 명확하게 확인된 둘뿐인 묘호로,[* 신라 원성왕의 묘호가 '열조'로, 최치원이 비문을 작성한 초월산 숭복사(崇福寺) 비문에서 확인할 수 있다.][* [[금관가야]]의 [[수로왕]]도 태조(太祖)라는 묘호가 있었다고 하지만 그건 《[[김해 김씨]] 족보》에만 나오는 기록이라 신뢰하기가 어렵다. 족보는 후대에 가문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조작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 [[일본]]측 기록에 백제에서 도모왕([[동명성왕]] 추정)을 태조로 모셨다는 기록이 남아 있기는 한데 참고 수준이다. 다른 사서(史書)에는 등장하지도 않는다. 고구려의 경우에는 [[태조대왕]] 역시 있지만 이 경우 역시 묘호라고 보기는 애매하다. 뭐 백제 왕실에서 동명왕이라는 인물을 '태조'에 준하는 인물로 보았을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금석문]]까지 종합할 경우, [[성한왕|태조 성한왕]],[* [[진흥왕 순수비]]에는 태조가 등장하며 [[문무대왕]]비와 흥덕대왕비에는 태조 [[성한왕]]으로 기록되어 있다. 사실 태종이 있는데 태조가 없을 리 없는 데다가 당대 기록인 금석문에까지 태조라는 말이 나오는 걸로 미루어보아 신라에 태조라고 불리는 왕이 있었던 건 확실하다. 다만 누가 태조인지는 알 수가 없어서 해석이 분분하다. [[성한왕]] 문서 참조.] [[원성왕|열조 원성왕]][* [[원성왕릉]]의 왕릉 [[사찰#s-3]]인 숭복사 비문에서 원성왕을 [[열조]]로 언급하기도 한다.]과 함께 신라 당대의 기록에서 묘호가 확인되는 세 명의 군주 중 한 명이다. 신라 이후의 기록에서 묘호가 확인되는 것은 [[추존]]된 [[세조]](世祖) [[김알지]][[http://sillok.history.go.kr/id/kua_13303026_005|(링크)]] 등 몇 명이 더 있으나, 신라 당시에 김알지를 세조로 추존했는지는 명확히 알 수 없다. 참고로 고려나 조선이 원칙적으로 모든 군주에게 묘호를 올렸는데,[* 고려의 경우는 [[원나라]]의 [[원 간섭기|내정간섭을 거치면서]] 어쩔 수 없이 [[제후]]의 법도를 따를 수밖에 없게 되면서 묘호를 폐지했고, 조선에서는 폐위된 임금은 묘호를 올리지 않았다.] 신라에선 일부 군주에만 묘호를 올린 이유는 해당 시대의 묘호 관행이 고려와 조선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묘호 제도는 본래 중국에서 건너온 것인데, 원래 중국에서도 모든 군주가 아니라 일부 중요한 업적을 남긴 군주에만 묘호를 올렸다. 예를 들어 [[한나라]]의 경우도 몇몇 황제는 태조, 세조 등의 묘호가 있었지만 《[[삼국지]]》로 유명한 [[영제(후한)|영제]]나 [[헌제]] 같이 업적이 없었던 황제는 묘호가 없었다. [[한나라#s-4|해당 문서 참조]]. 《[[삼국지]]》로 한국에도 유명한 조위•촉한•동오나 사마씨의 진나라([[서진]], [[동진]])도 마찬가지로 일부 중요한 군주만 묘호를 올렸다. [[중국]]에서 모든 군주에 묘호를 올리기 시작한 것은 [[당나라]] 때부터였고, 이를 한반도에서는 [[고려]]부터 처음 따라서 그렇게 한 것이다. 따라서 신라에서 모든 왕이 아닌 일부 중요한 왕에만 묘호를 붙였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시호의 '''무'''(武), '''열'''(烈) 자는 유교적 시법에서 지향하는 뜻이 컸으나 곤궁함이 많았고, 그럼에도 결국 결단력을 가지고 일을 추진하며 강대한 힘으로 공을 세워 백성들을 평안하게 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무열'이란 시호는 [[오(삼국시대)]]의 시조 [[손견]], [[서요]]를 중흥시킨 [[야율대석]]과 같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